[덤보] 지금의 덤보를 만들어준 다리! 브루클린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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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브릿지와 자유의 여신상

뉴욕의 대표 상징물을 뽑자면 자유의 여신상과 브루클린 브릿지가 떠오릅니다. 두 상징물은 각자 깊은 역사와 사연들이 있는데요, 오늘은 브루클린 브릿지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려 합니다.

History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의 선물이라고 하면 브루클린 브릿지는 독일 이민자가 만든 작품입니다. 브루클린 브릿지는 지어진지 130년이 지났으며 현재 21세기까지 이스트 리버를 가로지르는 매우 중요한 교차로이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입니다.

브루클린 브릿지는 독일 이민자 존 로블링이 제작을 했습니다. 존 로블링은 독일 베를린 공대를 졸업하고 25세에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자입니다. 그 당시에는 맨해튼에서 브루클린까지 배를 이용해 건너는 방법밖에 없어 존 로블링은 다리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스트리버의 물살이 너무 세서 건설을 반대했지만 그는 자금을 모아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페리와 선착장 사이에 다리가 끼어 파상풍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그 공사는 그의 아들 워싱턴 로블링이 이어받아 공사를 계속 진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수중공사를 하는 동안 공기 색전증에 걸려 드러눕게 되자 그의 아내 에밀리가 이어받아 공사를 완공시켰습니다. 석회암, 화강암, 시멘트를 사용한 브루클린 브릿지는 1869년부터 1883년까지 총 14년이 걸렸으며 1510만 달러가 소요됐으며 27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 공사였습니다.

After

완공된 브루클린 브릿지는 5989피트 (1.8km)의 길이와 1595피트 (486m)의 높이입니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건설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터라 그 당시 이 정도의 대형공사를 하기에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브루클린 브릿지를 완공할 당시 8대 불가사의에 들 정도로 매우 획기적인 공사였습니다.

Impact

브루클린 브릿지의 임팩트는 매우 컸습니다. 대표적으로 로워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대표적인 교통 요충지 이외에도 2가지 놀라운 스토리가 있는데요 한번 알아볼까요?

차이나 타운

브루클린 브릿지 건설에 투입된 중국 노동자들은 건설이 완료된 후 뉴욕시장에게 맨해튼 일부의 부지를 선물로 부여받았습니다. 중국인들은 그 부지를 이용해 모아둔 돈으로 음식점을 차리고 건물을 지었으며 지금의 차이나타운을 형성했습니다.

브루클린 Williamsburg

맨해튼의 렌트비가 비싸지며 예술가들과 빈민들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이주했습니다. 이주해서 제일 먼저 정착한 곳이 바로 덤보입니다. 덤보를 시작으로 브루클린 지역이 발전되고 유명인들도 많이 배출했습니다. 지금의 덤보가 있기까지 브루클린 브릿지가 큰 몫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브루클린 브릿지의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궁금한점 있으시거나 브루클린 주변에 대해 더 알고싶으신분들은 하단을 꼭 클릭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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